명리학으로 자신의 삶을 분석할 때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가요? 중요한 건 글자 그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속세 명리학이 지금 미신과 잡설로 전략해버린 이유는 다름아닌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구조와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밝지 못한 사람들이 명리학의 알파벳이라 할 수 잇는 천간 열 개(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와 지지 열두 개(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순차적으로 배합하여 만들어낸 예산 가지 경우의 수인 육십갑자의 글자만 가지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섹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무척 많이 있다.
이는 현실적인 상황을 살피는 사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명리학 이론만 보고 판단하는 이판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텍스트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굉장히 입체적인 콘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해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바람을 습관적으로 피우는 남편이 있다면 고민중이 사람이 있다고 치면,남편의 바람이라는 보이는 현상 이면에는 광장히 많은 사회적 요수가 숨어 있는 법이다. 여기에 각자가 품고 있는 심리적인 문제를 헤아려야 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의뢰인의 현상적인 고민만 듣고 다짜고짜 당신이 바깥으로 돌아서 그렇다. 그런데 남편은 게집이 없으면 재물도 없어지는데, 그렇다면 가난하게 살래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하면, 과연 이게 제대로 된 답일까요? 물론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렇게 밖에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걸까? 현실적인 상황을 살피는 사판이 안 되고, 글자 그대로의 명리학 이론만 보고 판단하는 이판만 하려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오랜 역사를 거쳐 만드어진 명리학은 절대 불변의 학문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 모든 패러다임도 이동한다. 명리학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이 시대의 환경에 맞는 사판의 체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면 어떻게 하면 될가? 사판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인문.사회과학이다. 이 사판을 쉼 없이 다련시킨 후에야 비로소 이판을 제대로 결합시킬 수 있고, 그래야만 진정한 명리학이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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