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와 20세기를 지나며, 일본과 중국에서는 아베 다이장과 웨이첸리라는 명리학계의 슈퍼스타가 있다. 아베당이장은 중일 전쟁때일본군 종군기자로 중국에 파견되어, 전장의 살벌하고 비참한 현실을 봤다. 평소 명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정작 본업은 제쳐 두고 중국의 당.송.명.청 시대를 거쳐 내려온 어마어마한 학술 자료를 모으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렇게 모은 트럭 한 대분의 자료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온 뒤, 그는 명리학 연구에 몰두해 스물두 권의 아베 다이장 전집을 완성했다. 그의 저술은 일본은 물론 한국까지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많은 명리학자들은 최근까지도 일본 추명리학에 근거해서 공부를 했다고 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추며학 책을 꽤 쓰기도 했다. 그 근거와 바탕이 되었던 것이 대부분 아베 다이장 전집이다.
일본의 추명학은 우리의 명리학과 비교해서 어떻게 다를까? 내 감상을 말한다면, 하나는 마음에 들고, 하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에든느 부분은, 역시 소음인 민족답게 깔금하게 내용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대충이 없다. 읽는 사람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잘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요소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비관적인 쪽으로 치우쳐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가 활동하던 20세기 전반기는 비극의 시대였다. 태평양전쟁과 중일전쟁이 일어났던 전쟁의 시대였고, 다라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저술이 되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 너무나 어둡다. 아무리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로 요약이 된다고는 하지만 특별히 좋은것도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재미있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일본의 추명학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나 지나치게 비관저이다. 무책임한 낙관을 막는다는 점에서는 말도 안되는 사기꾼들보다는 차라리 나지만, 우울해도 정말 너무 우울하다. 그럼ㅇ도 불구하고 일본의 추명학에는 우리가 명리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에 비해 웨이첸리는 나라의 스승 즉 국사였다.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자 마우쩌뚱이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자, 웨이첸리는 홍콩으로 망명해서 대만 총통 장제스의 스승이된다. 장제스는 대만의 국사를 결정할 때마다 20세기의 제갈량이라 불렸던 그에게 자주 의견을 구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님 역시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가서 자문을 구했을 만큼 웨이천리는 유명한 일화가 많은 인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명리학 거장이 누가 있을까? 한국에도 20세기 들어 세명의 위대한 명리학자가 존재했다. 첫번째 분은 1980년대 초반에 , 두 번째 분은 1990년대 초반에, 세 번째 분은 2000년ㅇ 돌아가셨으니, 모두 21세기를 넘어오지는 못하셨다. 첫 번째 분은 명리학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자강 이석영 선생님이시고, 두 번재는 도계 박재완 선생 그리고 마지막은 가장 영민하고 천재적 재능을 지닌 사람이라 불리는 제산 박재현 선생님이다. 사실 이 세 사람의 이양기만으로도 2박3일이 모자랄 정도로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여기까지만 적고 다시 자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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